ㆍ‘티베트하우스코리아’ 추진중인 남카 스님

“진리와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창립을 준비 중인 게세 텐진 남카 스님은 29일 이같이 호소했다. 티베트하우스코리아는 티베트 망명정부의 한국지부 격이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전세계 20여곳에 대사관을 두고 있다. 티베트코리아하우스는 티베트 망명정부 주 일본대사관의 한국 지부다.

티베트 망명정부의 한국지부 격인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창립을 준비 중인 게세 텐진 남카 스님이 29일 경기도 일산 여래사에 망명 경위를 설명하며 한국인의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성일기자.
남카 스님은 2004년부터 ‘티베트 망명정부 한국지부’를 이끌고 있다. 일산 여래사에 둥지를 틀고 개소식을 준비중인 남카 스님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묻어났다.

남카 스님은 “티베트인이 고통받는 실상을 전세계인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지만 안타깝게 힘이 부족합니다”라고 말했다.

남카 스님은 1969년 인도 남부에서 태어났다. 부농 가문 출신의 부모는 1959년 중국의 티베트 침공 이후 티베트를 등지고 인도로 망명했다.

남카 스님은 8세 때 출가했다. 할아버지의 간곡한 권고에 따른 것이었다. 남카 스님은 “아버지가 전쟁에 참여, ‘살상하지 마라’는 불교계율을 어겼기 때문에 승려가 될 수 없어 저한테 기대를 걸었다”고 말했다. 출가하지 않으면 아파 죽을지 모른다는 큰 스님들의 예언도 작용했다. 남카 스님은 “내 마음속에 스님이 되고 싶은 생각도 강하게 있었다”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승려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고행에 가까운 경전탐구와 엄격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더욱 힘든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남카 스님은 일 년에 한번 고향에 갈 수 있었다. 직계 스승이 할아버지의 조카이기 때문에 그나마 가능했다. .

남카 스님은 티베트 불교 최대 종파인 겔룩파의 간덴사원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0년에 ‘게세라빰빠’(박사 중 최고 지위)를 획득했다. 2002년에는 게세(박사) 최종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다. 남카 스님 이름 앞에 ‘게세’가 붙은 이유다.

한국과의 인연은 남카 스님과 달라이라마의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쯤 간덴사원 법당 개소식에 달라이라마가 찾았다. 티베트불교 의식에 따라 화두를 놓고 승려 간 논쟁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수천명의 승려가 질문을 하고 남카 스님이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달라이라마는 남카 스님을 눈여겨봤고, 이튿날 남카 스님에게 비구니계를 수여했다.

2004년 달라이라마는 남카 스님을 다람살라로 불렀다. 달라이라마는 “티베트와 한국의 불교계 간에 상호이익을 도모하고 한국에 티베트 상황을 알리는 역할을 해 줬으면 합니다”라고 부탁했다.

남카 스님은 곧장 또다른 티베트 승려인 췐벨 스님이 머물던 부산 광성사를 찾아갔다. 남카 스님은 그곳에서 티베트 실상을 알리는 일을 시작했다.

통역이 있었지만 언어가 문제였다. 마침 부산 범어사 주지 스님이 한국어학당을 권유하면서 도움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남카 스님은 부산외국어대 어학당을 1년간 다니면서 수행하는 것처럼 한국어를 배웠다. 남카 스님의 한국어가 남다르게 유창한 이유다.

언어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남카 스님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티베트 문제에 관심이 많은 통도사 주지 스님이 여래사 사무실을 이용하라고 도와줬다. 사무실 안에는 티베트의 역사와 실상을 알리는 팸플릿과 책자로 가득차 있다. 남카 스님은 “한국에서 티베트의 독립과 자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더 만나고 나서 신중하게 개소식을 열어 티베트 지지운동을 더욱 확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외신에서 흘러나오는 달라이라마의 ‘강경노선’ 선회에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남카 스님은 “달라이라마가 자치를 줄곧 요구했지만 중국 정부가 달라이라마를 비난하고 티베트인을 탄압하고 있어 티베트인의 의견을 모아보자고 말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남카 스님은 “달라이라마가 ‘중국과 대화를 포기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경향신문 <강병한기자>
2008/11/12 18:56 2008/11/12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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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뉴시스】

“달라이 라마 스님이 너무도 한국을 방문하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제주행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 스님의 제주 방문이 추진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기자와 만나 “제주도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면 누구나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다. 달라이 라마 존자의 한국 방문이 국가간의 미묘한 이유로 실현되고 있지 않지만 제주도를 들르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이달 말 일본 방문을 앞둔 달라이 라마가 귀로에 제주도를 깜짝 방문할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후쿠오카현 불교연합회 창립 3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오는 31일부터 8일 간 일본을 방문, 기타큐슈와 도쿄에서 강연과 기자회견을 갖는 것으로 알려졌다.

달라이 라마는 지난 2000년 이후 여러 차례 한국 방문 비자를 신청하는 등 방한을 희망해 왔다. 평소 “한국 정부가 방한을 허용한다면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가겠다”며 각별한 애정을 표현했지만 중국의 압력을 의식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자세로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의 자세에 대해 불교계를 비롯한 국민들의 비판이 거셌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통도사를 방문했을 때 정우 스님이 두 차례나 간곡하게 협조를 당부한 바 있어 가까운 시일 내에 성사될 것으로 관측돼 왔다.

정우 스님은 20여년 전 인도를 방문했을 때 달라이 라마를 친견한 이래 누구보다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2월에도 달라이 라마의 요청으로 인도를 방문하고 돌아왔을 정도였다.

정우 스님은 “그때 달라이 라마 스님께서 저를 보고 싶다고 하셔서 다녀왔다”면서 “제주는 언제든지 오실 수 있으니 일본 방문길에 들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지난 5월 부처님 오신 날에는 달라이 라마가 정우 스님을 통해 봉축 메시지를 보내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님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사는 티베트와 한때 나라를 잃었고 지금도 분단된 조국을 살아가는 한국은 참으로 닮은 것이 많다. 유전학적으로도 한국인과 티베트인은 형제처럼 가깝고 티베트 불교와 한국 불교는 똑같이 대승불교”라고 덧붙였다.

정우스님은 뉴욕 원각사를 비롯, 통도사가 관할하는 미주 사찰들을 둘러보고 22일 귀국했다.

<관련 사진 있음>

노창현특파원 robin@newi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2008/10/26 01:50 2008/10/2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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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티벳불교와 우리나라 불교의 비교
티벳불교의 현장을 찾아서


8월 15일부터 20일까지 프랑스 낭뜨에서 열리는 티벳불교의 법회장을 찾았다. 유명한 달라이 라마가 법을 설하는 시간은 모두 5일간 진행되었다. 삼엄한 경비 속에 사진 촬영은 물론 소지품도 모두 검사를 받아야 입장이 가능하였다.


   
 
낭뜨의 유명한 체육관에서 열린 달라이 라마 법회장을 찾은 사람들.
 
법회장은 커다란 체육관이다. 모두 미리 좌석을 구입하여야 입장이 가능하였다. 미리 책자를 배포하여 책을 중심으로 경전과 질문을 통해 문답식 대담을 하고 있었다. 프랑스어와 영어로 진행되었으며, 티벳스님들이 티벳말이나 영어를 불어로 통역하였다.


참가자들은 달라이 라마가 법석에 오르기 전에 착석하여 만트라를 다같이 읊었다. 우리 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무척 낯설었다. 우리는 절에 들어서거나 법회장에 가면 시작 전에 삼귀의나 반야심경을 외우는데, 프랑스에서는 짧은 만트라를 다 같이 외우는 것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가 법석에 오르기 전에 다 같이 일어서서 경배를 하였다. 선 채로 삼배를 올리거나 일배를 하는데, 그냥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조용히 일어나 조용히 앉아 곧바로 '경전의 몇 페이지를 펴세요'하는 말에 그대로 따라 마치 성경을 읽듯이 그 내용을 따라가며 공부를 시작하였다.


우리의 절문화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의식을 최대한 짧게, 내용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일요일에 가끔 절에 나가보면 법회의식을 하느라 정작 스님의 법문시간은 짧아지고, 그나마 짧은 법문 속에서도 책이나 교재는 없이 그저 스님의 말씀을 잠시 귀동냥하는 정도에 그친다.


프랑스 사람들의 진지함은 어디에서


프랑스 사람들의 이런 진지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들의 학문적 배경이 우리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일단 성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나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50-60대 성인들이 대부분이었으며, 사미계를 받은 붉은 승복을 입은 여승들이 참 많았다. 마치 그들의 노후를 티벳불교에서 누리려는 듯 참 많은 분들이 승복을 입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들에게 티벳불교는 또 하나의 동양의 신비로움이다. 그들의 참가 복장을 보아도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 티벳 의상과 중국 의상, 아마 한복같은 어쩌면 동양문화에 대한 갈급이 티벳불교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이들에게 불법승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티벳불교의 핵심 원리, 그 사상에 대한 궁금증이 그들의 발길을 달라이 라마에게 기울이게 하는 것 같았다.


티벳불교 법회에 참가하기 위해 머물렀던 집의 프랑스 여인에게 질문을 해보았다. 천주교 신자로서 불교를 접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불교에 대해 웬만큼 알고 있으니 신앙으로 받아들여 귀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곧바로 티벳불교를 신앙으로 받아들이기는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즉, 철학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집안에 커다란 약사불상, 갖가지 불교용품들을 늘어 놓고 경배하면서도 정작 신앙으로 삼지는 않은 점이 또 하나의 프랑스 불교인들이 불교를 받아들이는 형태다.


천주교와 비교하였을 때 불교의 어떤 점이 매력으로 느껴졌는지 물었다. 천주교의 성모님보다 불교의 자비심이 더욱 가깝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한다. 이것은 또 무슨 얘기일까? 그들의 삶에 보다 친근한 교리가 다가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달라이 라마의 책, 그들의 법문, 그들의 말과 행동에서 느껴지는 부처, 그런 것들이 그들을 감화시키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왜 하나님은 그들에게 멀어지고 있는가?


그들에게 하나님은 부처보다 왜 멀게 느껴지고 있을까? 불법이 보여주는 '진리'에 조금이라도 맛을 본 것일까? 하나님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제는 한계로 느껴진 것은 아닐까? 티벳불교가 프랑스에 들어간 지 어언 40년이 넘는다고 했을 때 그들에게 알맞는 방식으로 그들의 고민을 함께 해결해 줄수 있었다는 점이 그들을 불교에 귀의하게 했을 것이다.


티벳불교의 수행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미국인 교포로서 티벳 승려가 되신 용수스님의 안내로 찾아간 토굴은 철저히 혼자서 수행을 하는 한국불교의 간화선 같은 것이 아니었다. 혼자서 수행하는 장소는 있되, 스승이 한 달에 두어번씩 찾아와 공부를 점검하는 1:1 과정이 3년 3개월 3일동안이나 진행되고 있었다. 이런 분들이 한 스승 밑에 1,000여 명이나 된다하니 그 위력이 바로 티벳불교가 프랑스에 자리잡게 한 조직력이라 할 수 있다.


   
 
▲ 한국의 기독교 성국화사업등에 대해 국제사회에 알리는 중요한 계기였음에도 활용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쉬웠다. 왼쪽부터 묘운스님, 현장스님, 달라이 라마, 용수스님.
 
프랑스 불교의 특징은 티벳불교의 여러 종파가 있지만 이들끼리 분쟁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력다툼을 하지 않고 불교의 포교활동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를 깎고 출가를 하지 않았어도 쉽게 수행과정에 참여할 수 있게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정 출가를 하여 더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은 수계를 받겠지만, 대부분 일상생활을 하면서 수행까지 겸하는 재가불자들의 돈독한 신심이 티벳불교의 번창을 이루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국불교와 비교해 보니


한국불교에서 신행활동을 하는 재가불자들은 대부분 기초교리과정을 마치고 나면 그리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발견하기 어렵다. 프랑스처럼 한 곳에 7,000명이 모여 5일 동안 하루종일 공부하는 모습을.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법회라 하면 108배 정진, 염불정진, 참선, 묵언 등의 내용으로 진행된다. 큰 법회에서 스님의 말씀을 듣는다하여도 신자들이 교재를 들고 앉아 몇 페이지 몇 구절 부처님 말씀에 대해 토론해 본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달랐다. 부처님 말씀 몇 구절이 무슨 말씀이냐며 자신들이 궁금한 것들을 질문을 통해 해결하고 또 공부에 몰두하고 있었다.


   
 
▲ 이른바 토굴이라 부르는 개인 수행처를 방문하였다. 3년 3개월 3일을 스승님의 일대일 지도 아래 공부한다고 한다. 우리도 이런 전통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가장 큰 장점은 화두선이라 한다. 티벳불교에서 감히 따라 잡을 수 없는 고유하고도 면밀한 지름길, 간화선이 우리의 큰 보배라 한다. 그러나 그것을 감히 이루어낼 사람들은 참 드물다. 근기가 높은 스님들 몇이나 가능하다. 대부분의 신도들은 그저 좌절하고 만다. 너무 어렵고 잘 모르겠고, 지도해 주시는 스승도 찾기 어렵고...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불교의 개선은 시급하다. 신도교육에 있어 기초교리는 물론이고 흔히 열리는 법회에 차근차근 경전을 하나씩 공부해 나가야 한다. 금강경, 열반경, 법화경의 내용이 무엇을 담고 있으며 그것은 어떻게 우리 삶에 나타나 있는지를 토론을 통해, 진지하게 공부하는 자세가 마련되어야 한다.


흔히 깨달으면 된다는 생각에 경전읽기는 소홀히 하고 참선 수행이나 염불 수행을 권장한다. 그러나 무엇을 알아야 깨닫든지 말든지 하지, 우리 불교의 현실은 현실 유지를 위한 보시금, 동참금, 각종 재를 통한 조상에 대한 기복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부처님의 가피력을 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불교도로서 실천하고 참여하는 힘이 되는 불교의 사상에 대해 깊이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초파일에 등달기, 연등달기, 작은 부처님 모시기와 같은 불사에는 동참을 적극 권유하면서도 다음 번 절에 올 때까지 경전 몇 구절 어느 부분을 공부하고 오라는 말씀을 들어본 적은 거의 없다.


목표가 무엇인가


왜 절에 나가는가? 우리는 왜 석가모니 부처를 따르는가? 부처의 무엇을 닮고자 하는가? 종교편향 반대시위를 보면서 가슴아프게 느껴지는 것은 불법승 삼보를 우리가 얼마나 소중히 받들었는가 반성하게 된다. 그중에서 스님들이 우리 신도들에게 얼마나 큰 스승이 되고 있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포교하시는 스님들이 과연 얼마나 계율을 잘 지키고 계신가 생각해 볼일이다. 청정한 계율은 청정한 법신을 이루기 위함이자, 일반 신도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하다. 둘째, 교리와 법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기 쉽게 설파하고 계신가 생각해 보게 한다. 몇몇 유명하신 스님들을 제외하곤 불법에 대해 쉽고 재미있고 일상의 문제를 불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담긴 법문 내용을 듣기 어렵다. 한자말 그대로 게송을 읊으시면 우리 한글세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저 '먼산을 바라보게'된다. 셋째, 젊은이들에게 이해 가능한 책자, 동영상, 게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불법을 전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절에는 없다. 지방의 절에는 노보살들이다. 어린이도 찾기 어렵고, 더구나 젊은 대학생들을 절에서 만나기는 더욱 어렵다.


어떤 스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다. '새벽예불과 여자 문제만 해결되면 잘 살 수 있을텐데'. 물론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승가의 전통이고 그 고통 속에서 깨달음의 길을 갈급하게 한 원천이 되는 것일진대, 부처님 말씀 속에 왜 그렇게 수행을 했어야 했는지 밝히고 있는데도 그것이 큰 문제라면 일본처럼 또는 태고종처럼 결혼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본질을 잊어 버릴만큼 불법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이 새벽예불과 여자라면 그런 형식들은 과감히 벗어버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부처를 만나 것이 소중한 인연이라면 


부처를 만난 것이 그렇게 소중한 인연이라면, 이 인연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 될 것이다. 부처, 그 말씀이 소중한 것이라면, 그 말씀을 언제나 들을 수 있도록 법석이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불교의 가장 큰 문제는 권위주의인 것 같았다. 프랑스에서는 권위와 형식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존경하는 마음은 불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구현하는데 있을 것인바, 그것을 통하여 존경과 예경을 다하면 되지 않을까? 내용을 탐구하자. 그래야 프랑스인들과 함께 토론하고 불국토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아! 기독교인들이 불교탄압을 하는 가장 밑바닥에는 교육을 치밀하게 하지 못한 우리 어른들의 몫도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질타를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다. 부연하자면, 일본평화박물관 순례 시에 기독교단체와 여행을 했을 때, 그 치밀한 준비에 놀랐다. 관계자와의 면담, 인터넷으로 사전 일정과 계획 짜기, 사후 보고서와 토론회 개최하기까지 정말 빈틈없이 진행되는 것을 보았다.


이번 프랑스 여행은 그와 비교했을 때 정말 실망스럽다. 사전 일정을 알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관계자와의 면담도 계획에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의 작은 경험이지만 기독교단체와 불교단체와의 격차는 이렇듯 드러난다. 기독교단체의 치밀함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 그것이 불교를 살리고 우리 인류에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다.


초파일 행사에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 프랑스 신도들처럼 4박5일 일정의 토론회가 열릴 수 있는 힘을 갖춘다면 아무리 기독교가 맹위를 떨친다하여도 부처님의 그 위대한 말씀은 펄펄 살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림 museumschool@naver.com


입력 : 2008년 08월 30일 00:53:23 / 수정 : 2008년 09월 01일 18:47:23
2008/09/07 23:27 2008/09/07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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